‘꿩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다. 사용하려는 물건이 없거나 문제가 있으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체해서 쓸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물며 사용하려는 물건이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하루라도 속히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 중에 꿩 같은 존재를 꼽자면 ‘천연가죽’을 들 수 있다.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질감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재지만, 동물을 보호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천연가죽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같은 천연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신개념의 가죽이 등장하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의 전문 기업들이 개발한 이 가죽에 신개념이라는 표현을 붙인 이유는 바로 동물이 아니라 균류(菌類)인 버섯을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버섯의 균사체를 활용하여 가죽질감 소재 만들어
천연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인조가죽으로 부르는 합성피혁이 다양한 분야에서 쳔연가죽을 대체하여 활용되고 있다. 부직포와 폴리우레탄을 이용하여 만드는 합성피혁은 저렴하면서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합성피혁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소재다. 천연가죽보다 표면 강도가 강하며 부드럽지 않아서 오래쓰면 표면이 갈라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천연가죽과는 달리 통풍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피부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소재업계는 천연가죽의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장점과 합성피혁의 저렴하면서도 가공이 용이한 장점을 모두 갖춘 새로운 소재를 오랫동안 꿈꿔 왔는데, 최근 개발된 버섯가죽을 통해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버섯가죽 개발의 선두주자는 미국의 바이오벤처기업인 ‘볼트스레드(Bolt Threads)’社다. 미 캘리포니아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댄 위드마이어(Dan Widmaier)’ 대표가 설립한 이 회사는 거미줄에서 착안한 실크제품인 ‘마이크로실크(micro silk)’로 유명세를 떨친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버섯가죽은 마일로(Mylo)라는 브랜드를 가진 소재다. 마일로를 처음 접해본 소비자들은 누군가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연가죽의 질감과 유연함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만드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소비자들에게 위드마이어 대표는 “옥수수 줄기를 깔고 그 위에 버섯의 균사체를 배양한 다음, 마무리 공정과 염색 공정을 거치면 천연가죽과 같은 질감을 가진 소재로 변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죽처럼 질긴 물성은 온도와 습도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균사체가 얽히고 섥히면서 복잡하게 꼬일수록 가죽의 강도가 증가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균사체(mycelia)란 백색의 솜털 또는 실오라기처럼 보이는 곰팡이의 몸체를 말한다. 버섯은 곰팡이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른 곰팡이들처럼 이런 균사체를 기초로 자라게 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마일로의 제조에 사용되는 균사체는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물로부터 천연가죽을 얻고자 할 경우 일정 크기로 성장해야 하지만, 균사체는 몇 주만에 성장하게 되므로 천연가죽보다 생산 효율도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볼트스레드社는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마일로를 소재로 한 가방을 전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전시가 마무리되는 6월부터는 마일로로 만든 가방에 대해 본격적인 예약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위드마이어 대표는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는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의 실현’이다”라고 강조하며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가죽처럼 뛰어난 소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다짐했다.
버섯의 겉껍질로 천연가죽과 가장 유사한 질감 표현
마일로가 버섯의 균사체를 바탕으로 한 버섯가죽이라면, 이탈리아의 원단업체인 ZGE社가 개발한 버섯가죽은 버섯의 갓 부분에서 벗겨낸 겉껍질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버섯(mushroom)과 피부(skin)의 철자를 조합하여 만든 ‘머스킨(Muskin)’은 이 버섯가죽의 브랜드다. 소비자들로부터 천연가죽과 가장 유사한 질감을 갖고 있다고 찬사를 받을 정도로 머스킨의 감촉은 천연가죽과 흡사하다.
ZGE社의 관계자는 “중국이 원산지인 거인버섯(giant mushroom)의 갓 부분에서 겉껍질을 추출한 후에 가공하면 마치 코르크같은 색을 내는 버섯가죽이 탄생하게 된다”라고 언급하며 “특히 표면 감촉이 스웨드(suede) 가죽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스웨드 가죽이란 벨벳같이 부드러운 가죽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무리 공정 시 가죽의 표면을 긁어서 보풀이 일게 한 부드러운 감촉의 가죽을 가리킨다. 또한 부드러운 촉감 외에도 머스킨은 자연 방수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방수화 같은 신발을 만드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ZGE社의 관계자는 “머스킨은 통기성이 뛰어나며 화학물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완전 무독성인 천연 소재라 할 수 있다”라고 전하며 “따라서 신발은 물론 모자나 시계줄처럼 피부에 직접 접촉하는 패션제품에 사용하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